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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표정으로… :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9일 굳은 표정으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농단’ 공판… 前사법수장 사상첫 피고인석 앉아

“공소자체 부적합” 강력 반발

직업 묻자 “없습니다” 답변

檢은 “梁, 재판 시나리오 지시”

前대법관 2명도 법정 출석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최정점에서 재판거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9일 첫 공판에 출석해 “모든 건 근거 없고 소설의 픽션 같은 얘기”라며 “검찰의 공소 사실을 모두 부인한다”고 밝혔다. 또 “이 공소 자체가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사법부 전 수장이 피고인석에 앉은 것은 71년 사법부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5부는 이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 양 전 대법원장과 두 전직 대법관의 1회 공판을 열었다. 재판이 열린 417호 대법정은 앞서 박근혜·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은 곳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10시 법정에 들어섰다. 5명의 변호인단이 모두 일어서서 맞이하자 굳은 표정으로 법정을 가로질러 피고인석으로 향했다. 검은색 정장에 흰 와이셔츠를 입은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장이 직업을 묻자 “직업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도 입정해 양 전 대법원장과 대면했다. 참여연대, 민변 등 시민사회단체들도 이날 ‘두눈 부릅 사법농단 재판 시민방청단’을 꾸려 방청했다. 이날 방청석은 약 150명의 방청객과 취재진으로 가득 찼다.

검찰은 이날 공판에서 ‘기소 취지 및 입증계획’이란 제목의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검찰은 앞서 ‘공소장에 공소사실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결과나 영향 등을 계속 기재하고 있다’는 변호인 측과 재판부 지적을 받아들여 일부 표현을 삭제하거나 수정해 공소장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 각 법관 및 공보관이 사법 행정 라인을 구성하고 일사불란하게 수행했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신원을 확인하는 질문을 끝으로 줄곧 바닥을 쳐다보다가, 검찰이 “사법부 수뇌부가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재판 시나리오를 검토하라고 제시했다”고 말하자 잠시 고개를 들어 허공을 응시하기도 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옛 사법부 수뇌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사건 형사재판 등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검사 측이 정력적으로 공소 사실을 얘기했지만 모든 건 근거 없는 것이고 소설의 픽션 같은 얘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자세한 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다”고 했다. 고 전 대법관은 “제가 그토록 사랑하던 이곳 형사법정에 서게되니 참담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법관은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법리를 다투는 취지로 의견서를 냈다”고 말했다.

김윤희·이희권 기자 wor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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